십자군 전쟁과 전염병 -1
목차 |
제 1장 서론 : 십자군 전쟁과 전염병의 연관성에 관한 조사 연구의 필요성 제 2장 본론 : 십자군 전쟁 발발 당시의 의학수준 2.1 이슬람 국가의 의학 수준 2.2 중세 유럽 국가의 의학 수준 제 3장 : 십자군 전쟁으로 인한 당시의 전염병 3.1 전염병이 십자군 전쟁에 미친 영향 제 4장 : 결론 4.1 십자군 전쟁과 전염병이 가진 의의 4.2 연구의 한계 및 과제 |
Ⅰ. 서론 : 십자군 전쟁과 전염병의 연관성에 관한 조사 연구의 필요성
전쟁은 정치적인 요인이나 사회적인 요인, 경제적 요인, 혹은 지정학적이 요인 같이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다. 그리고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에 의해서 발생한 전쟁은 그 파급력 역시 엄청나다. 전쟁의 승패로 인해 한 민족이나 국가, 문화가 사라지기도 하고 번성하고 발전하기도 하기 때문에 전쟁에 승리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며,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군 전략가나 역사학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에 대해 분석을 하고 연구하여 왔다. 고대
동양의 손자병법부터 해서 근대 서양의 전쟁론 가 대표적인 예이며 이들은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군사력과 지형, 그리고 방어와 공격의 군사적인 전략 같은 전쟁에 직접적인 요인에 관한 연구는 물론 국가 경영과 외교적인 요인 그리고 명분 등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광범위한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십자군 전쟁 또한 마찬가지이다. 십자군 전쟁 역시 종교적인 관점이나 그 당시 유럽과 중동의 정치적인 형세, 그리고 경제적인 측면 등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발단이 되어서 발발한 전쟁이다. 십자군 전쟁이 역사적인 측면에 끼친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십자군 전쟁의 진행과정과 십자군 전쟁이 경제적, 정치적, 혹은 종교적인 측면에서 끼친 영향에 대한 분석과 자료는 많지만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전염병과 의학적인 측면에서 다루는 내용은 별로 없기에 이 부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조사를 하고자 한다. 십자군 전쟁과 맞물려 전염병이 발생하였고 이 전염병이 전쟁, 나아가 역사의 판도를 바꾸는데 분명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이에 대해 조사를 하는 것은 십자군 전쟁과 그 것이 미친 영향에 대해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Ⅱ. 본론 : 십자군 전쟁 발발 당시의 의학수준
2.1 이슬람 국가의 의학 수준
중세시대의 이슬람은 발단된 의학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유럽은 문화가 꽃피고 발달된 과학 기술과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는 반면에 이슬람 국가는 사악하고 미개하며 원시적이고 문명화되지 않은 문화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 반대다. 당시 유럽은 중세의 암흑기라고 말할 정도로 과학이나 의학 외에 인간의 의한 합리적이고 자유로운 문화와 생각을 철저히 배제한 체 오로지 기독교 중심의 문화를 강조하였다. 이와는 반대로 이슬람 문화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찬란한 문화를 번역하고 연구하며 그들만의 문화로 흡수하고 연구하여 발전시켜 나갔다.
8세기 중후반에 압바스조의 2대 칼리파 ‘알 만수르’는 문명이 부재한 이슬람 제국을 변화시킨 선두주자라 할 수 있다. 그는 수많은 학자를 제국의 수도 바그다드로 끌어 모았다. 중세 유럽이 암흑기 속에서 그리스, 로마의 찬란한 유산을 썩혀가고 있을 때, 이슬람 제국은 이 모든 것들을 수집하여 아랍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지속했다. 잊혀져가던 고대 문명의 과학기술은 이렇게 아랍어로 번역되어 다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후나인 이븐 이샤끄(809~873)에 의해 번역된 히포크라테스, 갈렌의 의학논문은 이슬람 의학을 세계 초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830년 설립된 지혜의 집(Dar al Hikhma)에서는 대학, 도서관, 연구소, 번역센터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며 그리스와 로마, 페르시아, 인도의 학문자료를 아랍어로 끊임없이 번역했으며, 심지어 중국과 고려까지 건너와 다양한 학문을 수용했다.
이처럼 이슬람은 의학을 포함한 여러 문화를 받아들였는데, 아랍어로 번역하는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연구하고 발전시켜 나갔다. 이들은 단지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그치지 않고 인도, 나아가 중국의 의학 기술을 받아들여 더욱 더 발전된 문화를 이룩하였다. 물론 의학 분야에서도 획기적인 발전이 이루어 졌다.
황금기를 누리던 이슬람 제국의 곳곳에는 큰 병원이 세워졌고 입원실, 수술실, 진찰실. 목욕실, 식당 등이 완비되었다. 의사가 되기 위한 일종의 국가 자격시험을 실시하여 오늘날 의사 면허 제도의 효시가 되었다.900년까지 아랍의학은 번역을 통하여 그리스와 인도의학을 완전히 수용하였다.
알-라즈(Al-Raz, 865∼923)는 「포괄적인 책」(comprehensive Book) 20권을 저술 하였는데, 이 책에는 그리스, 인도, 아랍의학의 정수가 집약되어 있다. 이븐-시나(Ibn-Sina, 980∼1037)는 이슬람세계의 아리스토텔레스라고 불릴 만큼 학문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의학에서는 「의학전범」(Canon of medicine)을 저술하여, 이 책에서 맥을 짚어 환자를 진찰하는 방법을 소개하였다. 그는 또한 최초로 정신, 신경병에 대해서도 기술하였다. 재미있는 예를 들자면, 상사병을 일컬어 체력이 감퇴하고, 의욕이 저하되는 여러 가지 만성질환이라 설명하고, 치료법은 꿈에도 그리워 못 견디는 상대와 결혼시키는 것이라 저술하였다.
콜로세움의 검투사를 치료하며 해부의학을 연구하여, 당시까지 의학에 있어 절대적인 위치를 고수하던 갈레노스의 권위는 이슬람 의학자들에 의해 도전받기 시작했다. 이븐 알-나피스(1210 ∼1288)는 심장에 좌우를 서로 통하는 작은 구멍이 있다는 갈레노스의 주장은 잘못되었다고 하였다. 그는 우심실의 피는 허파를 거쳐 좌심실로 옮겨진다는 피의 소순환을 주장하였다. 이븐-루시드(Ibn-Rushd, 1126∼1198)는 「일반의학」을 저술하였는데, 이 책은 해부, 생리, 병리, 진단, 위생 등을 광범위하게 기술한 종합의학서이다. 그는 눈의 망막의 기능을 제대로 이해한 첫 의학자이고, 또 천연두는 한번 앓은 사람은 다시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이처럼 이슬람의 의학 학문 체계는 상당히 과학적이고 구체적으로 나열되어 있으며 발전된 의학 체제를 구축하였다. 이들은 이러한 의학을 단순히 학문 분야에만 국한 시킨 것이 아니라 병원을 짓고 사람들을 실제로도 치료하였다. 세계 최초의 병원은 유럽이 아닌 아랍 무슬림이 건립하였으며 9세기에 이미 세계 곳곳에 병원이 보급되어 있었지만 서양에는 13세기까지도 병원이 없었다는 사실을 보면 이슬람 문화가 얼마나 의학적으로 얼마나 발달되고 실용적으로 실생활에 사용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슬람 의학은 이미 이 당시 위생이란 측면을 중요시 여겨 공중위생을 권장하였으며 이슬람 병원은 물과 공기를 자유롭게 순환하여 위생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상당히 발전된 의학기술을 지니고 있었다. 즉, 이슬람 의학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의학을 받아들여 그들 스스로 연구하고 분석하여 더욱 발전된 의학 학문을 성립하였으며 후에 이것이 서구사회로 넘어가 서구사회의 의학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